시놉시스
<파 프롬 베트남>은 1967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해 10월 미국 뉴욕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이면서 프랑스보다 더 큰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의 ‘베 트남전’에 대한 반응은 금방 이길 것 같았던 전쟁의 수렁에 빠져 아직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한 채 ‘자기부정’의 단계에 허우적대는 상태였던 반면 프랑스는 이미 ‘디엔 비엔 푸’ 전 투에서 대패한 후 인도차이나에서 퇴각한 이후 스스로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합리화할 줄 아는 단계였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이 영화 안에 마오주의적 정서가 지배하는 가운데 이 영화의 저변에 ‘사르트르의 지식인’론을 깔아둠으로써 ‘베트남’이라는 존재를 이미 정치적으로 자각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베트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 이 주는 안도감은 곧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고자 했던 지식인들에게 ‘참담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는데 그 절정은 그 다음해 ‘68년 혁명으로 나타났다. 베트남전의 여파는 고다르 와 트뤼포 같은 ‘앙팡테리블’에 의해 칸영화제가 점거되고 ‘중단’되도록 했고 지가베르토프 집단 같은 영화운동으로 나아갔으며 집단적인 ‘뉴웨이브’의 흐름이 세계각국에서 터 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7명의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의 뉴스릴 필름의 상당수는 요리스 이벤스에 의해 촬영되었고 다큐멘터리로서의 영속적인 가치를 보장하는 가장 빛나는 장면도 그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크리스 마르케의 작가로서의 면모는 이 영화에 통일성을 견지하도록 해주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아직 젊었던 고다르는 그가 나아가고자 했던 ‘지가 베르토프’ 집단의 영화적 기치를 영화문법적으로 보여주는 데 치중하며 카메라-아이의 실험적 쇼트 구성을 통해 이후 그가 보여주었던 영화적 행보의 전 조를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파 프롬 베트남>에는 이처럼 다양한 감독들의 베트남 전에 대한 발언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베트남인들이 참호와 개인방공 호를 만들며 진지한 눈빛을 빛내며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들이다. 비록 미군이 5만 여명의 전사자를 냈고 남북 베트남 인들의 사상자가 그 수십 배에 달할지라도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은 어떻게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가를 보여주는 이 같은 장면들이라 할 것이다. (박부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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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 요리스 이벤스, 윌리엄 클라인, 끌로드 를르슈, 크리스 마르케, 알랭 레네
Jean-Luc GODARD, Joris IVENS, William KLEIN, Claude LELOUCH, Chris MARKER, Alain RESNAIS<파 프롬 베트남>은 1967년에 영화계 거장들 사이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서사시이다. 장 뤽 고다르(<네 멋대로 해라>), 요리스 이벤스 (<바 람 이야기>), 윌리엄 클라인 (<부두>), 끌로드 를르슈 (<남과 여>), 크리스 마르케 (<태양없이>), 알랭 레네 (<히로시마, 내 사랑>)는 베트남에 서의 미국의 군대 개입에 항의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 프로듀서인 크리스 마르케의 내레이션에 따르면 “감독들은 이 작품 활동으로 침 략에 대항해 투쟁하고 있는 베트남 국민들과의 연대를 확실히 밝힌다.”
Credits
- DIRECTOR Jean-Luc GODARD, Joris IVENS, William KLEIN, Claude LELOUCH, Chris MARKER, Alain RESNAIS
PRODUCTION COMPANY
- PRODUCTION COMPANY LA SOFRA
- Tel 33 1 44 88 29 24
- E-mail asanchez@lasofra.fr
